(오늘 아침, 절친의 정성어린 편지를 받고 제 마음을 써봤습니다).
나의 지음(知音) 그대여.

피 마르고, 가슴 저렸다.
'모욕과 음해와 거짓말'에 진 선거라서!
미래세대의 수십년을 결정할, 정부수립(1919년) 후 새 100년의 첫 대선이었기에!
2,000만 촛불시민의 염원을 받들어 '촛불2기 정부'를 꼭 성공시켜야 할 중차대한 고비였기에!
무능, 무례, 무지한 '폭주기관차'와 '가짜인생' 부부의 정권 찬탈만큼은 반드시 막고 싶었기에!
언론이 괴물로 만들어 놓은 한 외롭고 슬프고 한없이 억울했을 소년노동자의 삶에 '코리안 드림'을 안겨주고, 나라를 위한 무한헌신을 당부하고자 하는 심정에서!
그리하여 "개천에서 용 날수 있다".
"왼팔 굽은 산재(産災) 장애인도 꿈을 이룰 수 있다". "대한민국은, 약자라도 노력만 하면 강철 기득권을 깨고 성공할 수 있는 여전히 위대한 나라다"라고 외쳐보려고!
깊은 반성도 했다. 후회도 컸다.
우리 캠프가 모두 한 발씩만 더 뛰었다면ᆢ
문재인 대통령님이 국민께 진솔하게 사과 한번만 했더라도ᆢ
민주당 의원 전원이 광화문광장에 무릅꿇어 국민께 석고대죄하고, '자정 (自淨)선언'만 해주었어도ᆢ
그놈의 '부동산 실패'를 "확실히 고치겠다"고 마지막 TV토론 때 한번 더 강조했더라면ᆢ
"ᆢ운명이란 벽 앞에/ 당당하게 마주칠 수 있어요/ 난 꿈이 있어요. 그 꿈을 믿어요. 나를 지켜봐요"라는 '거위의 꿈'을 불러주고 싶었다.
그러기에 이 치명적인 패배는, 단장(斷腸)의 절망은, 참으로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대선을 여러번 치렀지만, 다섯 달을 이렇게 혼 빼듯 뛰어본 건 처음이다. 그만큼 절박했다. 이기고 싶었다. 신에게 수없이 빌었다.
고통과 악몽, 불면(不眠)의 나날. 나를 꺼내준 건 그대가 보내준 베토벤 교향곡 5번 '운명'. 최고 명반이라는 1974년 판 Kleiber 연주를 열번쯤 듣고 나니 회복탄력성(resilience)이 작동함을 느꼈다.
차이콥스키와 도스토예프스키의 나라 우크라이나 시민들이 요즘 러시아와 싸우며 부른다는 불타는 저항의 노래. "가라 상념이여, 금빛 날개를 타고"로 시작되는 베르디 오페라 나부코(Nabucco)의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도 의욕 주기로는 최고의 곡이더라.
괜찮다. 운명이다.
이보다 더한 세상도 살아봤지 않아?
이 또한 지나간다.
죽은 땅에도 라일락은 피어난다(T S Eliot. 황무지).
비록 70이라도 이제 다시 시작이다!
'Retire'는 타이어 바꿔 끼고 다시 달리라는 거다.
애송시, 존경하는 신영복 선생의 <처음처럼>을 나직히, 그러나 힘주어 낭송해본다.
[ᆢ하루가 저무는 추운 겨울 저녁에도/마치 아침처럼, 새 봄처럼, 처음처럼/언제나 새 날은 시작하고 있습니다/산다는 것은 수많은 처음을 만들어가는/끊임없는 시작입니다].
"Tomorrow is another day".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Gone with the wind)에서 스칼렛 오하라(비비안 리)가 외친 마지막 대사.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로 번역된 그 원문(原文)은 이거라지?ᆢ
2022.03.14 아침.
김기만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