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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윤 칼럼(22-30)> 인문학 강좌 – 종교개혁의 역사와 유산

가디언이십일 2022. 5. 23. 06:05

국립중앙박물관 모란못(Peony Pond)에는 수련(睡蓮, water lily)이, 그리고 정원에는 작약(芍藥, peony)이 만발하였다. 여성화가 한 사람이 작약을 화폭에 담고 있었다. 필자와 내자는 오늘(5월 18일) 오전 10시부터 2시간 동안 국립중앙박물관회 연구강좌 <서양사 깊이 읽기 II> 제2강 ‘종교개혁의 역사와 유산’을 수강했다. 신라대학교 박재욱 교수가 열강을 했다. 

제2강 강좌의 소제목은 1. 개신교 종교개혁 회고(개신교 종교개혁의 결과, 개신교의 스펙트럼, 개신교 개혁의 유산과 한계), 2. 종교개혁의 배경(르네상스 인문주의와 종교개혁, 성직자의 타락에 대한 인민의 혐오), 3.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와 독일의 내란(루터의 행보, 95개조 반박문, 독일 정치의 분열), 4. 종교개혁의 확대(Anabaptists, 장 칼뱅의 신학과 영향), 5. 개신교 전파의 결과 등으로 구성되었다.  

종교개혁(宗敎改革, the Reformation)은 16-17세기 유럽에서 로마 가톨릭 교회의 쇄신을 요구하며 등장했던 개혁운동이다. 기독교가 중세 사회의 중심에 놓여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게 되었는데, 이때 교회가 썩고 성직자들이 부패하기 시작했다. 이에 교회의 개혁이 필요하다는 데 대해서는 모두가 공감하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 교회의 권력에 맞선다는 것은 바로 죽음을 의미해서 누구 한 사람 앞장서는 사람이 없었다.  

이때 분연히 일어난 사람이 독일의 사제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였다. 그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서 중재자로서 그 역할을 독점하려는 교회에 반대하고, 신자들 누구나 하나님과 직접 대화할 수 있음을 공표했다. 루터의 주장은 누구나 제사장(사제·신부·목사)이 되어 하나님을 볼 수 있다고 지적한 것이다.  

종교개혁의 시발점은 교회의 면죄부(免罪符) 판매였다. 이 무렵, 교황청(敎皇廳)과 가톨릭교회는 부패한 생활 때문에 재정적으로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그런데도 교황 레오 10세는 성베드로 대성당을 건축하기 위해 면죄부를 팔았다. 이때 사제들은 “누구든지 회개하고 기부금을 내면 죄를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돈이 이 상자 속에 짤랑하고 들어가는 순간, 영혼은 지옥의 불길 속에서 튀어나오게 됩니다”라고 설교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루터는 1517년 10월 31일 비텐베르크 교회 정문에 라틴어로 된 <95개조 논제(Ninety-Five Theses)>를 내었다. 일종의 항의문인 이 의견서는 처음에는 교회 정문에 붙인 대자보(大字報) 수준이었으나 당시 인쇄술의 발달로 의견서가 인쇄하여 전국에 배포된 결과 센세이션(sensation)을 일으켜 독일 국경을 넘어 유럽 전체로 확산되었다.  

루터의 주장은 인간은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을 수 있으며, 사람이 만든 형식이나 권위 같은 외면적인 것은 구원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기독교의 진리는 사제들의 권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에게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으므로 이 말씀을 통해 구원을 얻는다. 모든 사람은 신 앞에 평등하므로 우리를 옭아매는 모든 율법으로부터 자유로워지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종교개혁운동은 민중의 마음을 포착하여 역사를 움직였다.  

마르틴 루터는 1483년 독일 아이슬레벤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광산업을 경영하면서 득세한 시민계급의 한 사람이었으며, 그는 아들을 법률가로 만드는 것이 꿈이었다. 마르틴은 아버지의 권유에 따라 에르푸르트 대학에 입학해 법률 공부를 시작했다. 1505년 7월 2일 마르틴이 집에 갔다가 에르푸르트로 돌아가는 길에 벼락이 바로 옆에 떨어진 순간 마르틴은 땅에 엎드리면서 수호성인을 불러 “성 안나여, 저에게 힘을 주소서. 저는 수도사(修道士)가 되겠습니다.”라고 기도했다.  

마르틴은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7월 17일 에르푸르트의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에 들어갔으며, 1507년 사제(司祭)가 되었다. 1511년 비텐베르크 대학교로 옮겼으며, 1512년에 신학박사가 되었고 1513년부터 성서학 강의를 시작했다. 1515년 마르틴 루터는 아우구스티누스 수도원 10곳을 감독하면서 새로 발견한 복음의 씨앗을 전파하는 위치에 서게 되었다.  

<사진> (1)루터의 95개조 논제(Ninety-Five Theses), (2)모란못의 수련, (3)박물관 정원의 작약, (4)박명윤·이행자 부부.

 

靑松 朴明潤 (서울대 保健學博士會 고문, AsiaN 논설위원), Facebook, 18 May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