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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원 '처녀 농사꾼', 경영인으로 우뚝서다.

가디언이십일 2011. 1. 8. 00:02

우리원 '처녀 농사꾼', 경영인으로 우뚝서다.

부친유업 받들어 '강대인 생명쌀' 명품화 성공 
 
 
 

30여 년간 아버지가 이룬 유기농법의 대업을 계승하여 이를 더욱 발전시키며‘강대인 생명쌀’ 브랜드를 키워온 故 강대인(58)씨의 장녀 강선아(26)씨가 이제는 단순히 후계자가 아닌 여성농업 경영인으로 우뚝서 귀감이 되고 있다.   

               ▲ 명품쌀 생산업체 우리원과 우리원식품 대표 강선아씨(27)     © 한은남 기자
 

강씨의 부친은 지난 1979년 무농약으로 벼농사를 시작한 이후 최근까지도 벼 박사라 일컬어질 정도로 유기농업 쪽에서는 '벼' 하면 '강대인'으로 통하던 인물이다.

 

故 강대인(58)씨의 농사법은 이른바 바이오다이내믹 (생명동태 농법) 농법인데 쉽게 설명하자면 우주의 기운에 따라 짓는 농사법으로 독일의 루돌프 슈타이너라는 사람이 개발한 것으로 알려 졌으나 강대인 씨는 이와같은 농사법은 이미 오래 전부터 우리 조상들이 일상적으로 써왔던 것이며 이를 더욱 발전시켰다.

 

모두 나열 할 수는 없으나 故 강대인(58)씨의 농법을 소개하자면 옛날 우리 선조들은 날을 받아서 파종을 했는데 파종작물은 별들의 영향을 많이 받으므로 음력으로 1일에서 15일 사이에 하는게 좋으며 15일 이후에 파종따면 작물에 병이 잦고  사람도 이 시기에 태어난 사람은 보통 외향적이고 15일 이후에 태어난 사람은 내향적이라고 한다.

 

수확할 때는 반대로 음력 29일, 30일에 해서 저장하는 게 좋은데 이유는 작물들도 별들의 영향을 받기때문, 대개의 작물은 발아할 때 거의 모양이 같았다가 자라면서 점차 자기 모양을 만들어가는데, 각자 자기에게 영향을 주는 별들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한 논둑에다 대나무를 정삼각형 꼭지에 해당하는 세 곳에다 대나무를 꽂아놓고 위에다 깃발을 다는데 삼각형은 기를 잘 받아들이는 모양이고, 깃발을 다는 것은 기를 더 세게 받아들이려는 장치이며 계절마다 각각 봄에는 청색, 가을에는 노란색 깃발을 단다. 선조들은 논에 기를 불어넣기 위해 버드나무도 심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와같이 故 강대인씨의 농법을 계승한 장녀 강선아씨는 부친이 남긴 1만 2천평 규모의 논에서 ‘강대인 생명쌀’을 생산한다.  

 

                ▲ 우리원의 대표브랜드 '강대인 생명쌀'     © 한은남 기자               

 

 

그녀가 생산하는 쌀은 모든 환경 품질인증을 받고 출하되고 있으며 부친이 국내 최초로 1995년에 벼 부분 유기농 인증서를 받은 후 그동안 각종 농산물에 대한 유기농 인증서만도 27개나 받았다.

 

다음으로 故 강대인씨의 유기농법 중에 특이한 것은 야채효소라는 백초액(百草液)을 농약대신 뿌려주는 것이다. 백초액은 산나물과 유기농으로 재배한 채소, 열매 그리고 영지버섯과 돌김, 미역, 파래 등 해초까지 약 70여 가지를 흑설탕 에 버무려 2년 이상 숙성시킨 것으로 농약 대신에 살포해서 작물의 병충해 예방 능력을 키워준다.

 

야채 효소 중에서도 강대인 씨의 백초액은 기존의 다른 것들과 달리 바다 해초류까지 포함해 70여 가지 이상을 발효시킨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뿐만아니라 백초액은 비타민, 미네랄, 유기산류 등 천연 효소를 다량 함유하고 있어 사람 건강에도 매우 좋은 건강 식품으로 이용되고 있는데 강대인 씨의 백초액은 그 효능이 널리 알려져 많은 사람들에게 건강 식품으로도 팔리고 있으며 처음엔 주변에 아는 사람 위주로 이윤없이 공급했는데 찾는 사람들이 많아져 결국 '우리원 식품' 회사도 열고 '백초액'이라는 상품등록까지 해서 판매하고 있다.  
 

▲ '강대인 생명쌀'을 생산하는 우리원 외에 유기농 자연식품생산업체 우리원식품은 백초액을 비롯 다양한 자연음료와 가공식품을 생산하고 있다.     © 운영자  


벼농사 뿐만 아니라 다양한 식품군과 부대사업까지 故 강대인씨의 가업을 어린 강선아씨가 계승하기로 결심하기까지의 과정은 어떠했을까?

 

 지난 2007년 강씨 부친의 건강이 악화될 당시 독일로 유학을 가려던 강선아씨는 선생님이 되기위해 교육학을 전공하겠다던 꿈을 잠시 연기하고 부친의 일을 돕기 위해 집에 돌아왔는데 1개월만 돕고 부친이 회복되면 독일로 떠날 계획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부친의 건강은 끝내 회복되지 않았고 결국 그동안 부친이 이루어 놓은 업적을 계승, 귀농을 결심하게 되는데 이후 작목반 운영 및 가공식품 사업교육관 운영, 유기농쌀, 오색쌀, 숙성발효액기스, 친환경 장류 등의 생산과 판매를 겸하며 경쟁력 강화에 본격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특히 가공 식품 유기인증을 받아 시설을 규모화시키는데 주력하는 한편 교육관을 운영하며 유기농 식품에 대한 생산에서 소비까지 꾸준한 연구에 몰두했다. 한편으론 농민들에게 농촌의 위기와 심각성을 일깨우게 하는데 주력하며 귀농생활에 익숙해져 갔다고 한다.

 

현재 2008년부터 운영하는 전통문화 체험장 및 교육장, 숙소, 친환경 식당 등을 갖춘 전남친환경 농업교육원은 그동안 1만여명이 다녀갔으며 농촌의 이해를 돕기 위해 만들어진 농업교육원은 벌교의 새로운 명소이다.
 
 강씨는 부친의 병환중에도 학업과 사업을 병행하며 2007년 한국벤쳐농업대학 문헌정보학과와 경영학과를 7기로 졸업했는데 강씨의 어머니와 아버지도 이 대학의 5기·8기라는 점에서 가족이 같은 대학 선후배라며 미소짖는다.
 
그녀는 “올해 초순 결국 부친께서 돌아가셨지만, 많은것을 전수해주셨으니 걱정없다"고 밝히고 이어 "‘강대인 생명의 쌀’ 브랜드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 부친의 유업을 받드는 것이며 소비자들이 믿고 찾는 세계적인 명품 쌀로 우뚝 서게 하겠다”고 강조했다.
 
 
한은남 기자 enhanok70@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