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2.04.16.
26세 비대위원장 박지현의 등장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한달 여전인 3월 13일, '대선 패배의 늪'에 빠진 민주당을 구하기 위한 '비상대책위원회'출범 때, 언론의 조명은 박지현 공동위원장에게 집중됐다.
내 아들(39)보다 13살 어린 '약관(弱冠)의 박지현'을 한달 여 지켜봤다. 순수하고 신선하다. 반면 가볍고 위험하다.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대통령을 배출한 70년 이상 역사의 정당이다. 젊은 피의 수혈은 절실하다. 그러나 정치경험과 활동이 전무(全無)했던 20대에게 공동위원장의 무거운 짐을 맡기고, 그의 말 한 마디에 당이 휘청거리거나 좌지우지 되는 모습은 참으로 민망하다.
당의 원로나 고위 당직자 누구라도 좀 제동을 걸어주리라 생각했는데 아무도 나서지 않는다. 괜히 말 붙였다가 행여 당의 '홍위병(紅衛兵) 대장'에게 난감한 꼴이라도 당할까봐 피하는 것일까?
당직자도, 국회의원도 아닌 일개 권리당원이지만 나라도 나서서, 용맹하지만 지혜를 알기는 아직 어려운 젊은이에게 고언(苦言)을 하기로 했다.
[상큼했던 출발]
박지현의 취임 일성은 좋았다. '반성'과 '쇄신'을 화두로 내걸었다. "지금이 마지막 반성과 쇄신의 기회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여성과 청년에게 기회가 없다는 것은 정치판의 구조적 문제라는 것을 깨닫고 바꿔나가야 한다".
2019년, n번방이 텔레그램에 존재하는 것을 알게된 후 이를 조사하는 2인조 '추적단 불꽃'의 '불'로 활약한 박지현. n번방 성착취물 제작 및 유포사건의 공론화에 힘을 쏟고, 결과적으로 조주빈 등 n번방 운영자들을 일망타진케 하는 데 공을 세웠다.
그의 이런 활약은 20대 대선에서 이재명 후보가 '이대녀'에서 승리를 거두는 데에도 기여했다는 평을 받았고, 올해 1월 당에 영입됐다.
['튀는 목소리', '이론(異論) 제기의 대명사'가 되다]
민주당 172명 전 의원 명의로 '검찰청법 개정안' 등 '검수완박'(검찰수사권 완전박탈)을 향해 총력전을 시작한 15일, 박지현의 입에서 당황스런 말이 터져나왔다.
"검수완박이 모든 걸 빨아들이는 이 시점에, 과연 우리 국민의 최대 관심사가 검찰 문제인지 자문해 봐야 한다", "강(强)대 강의 대치로 국민피로도를 높이고, 정치 혐오를 키우는 일을 이어가서는 안된다".
尹 당선자가 한동훈을 법무장관에 지명해 문재인 대통령, 이재명 전 후보를 포함한 민주당에 대해 '검찰 공화국의 전면전'(全面戰)을 선포한 상황에서 상당히 부적절한 언급이었다. '검수완박 속도전'에 비대위원장이 급제동을 거는 꼴이었다.
언론의 속성상 당론(黨論)과 결이 한참 다른 젊은 비대위원장의 발언은 대서특필된다. 국민들은 민주당의 입장이 무엇인지 헷갈리게 된다.
그는 그보다 사흘 전인 12일에도 "검수완박법이 통과되어도 지방선거에서 지고 실리를 잃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쓴소리를 했다. 말이 쓴소리이지 실은 참 어깨힘 빠지게 하는 '어깃장'이 아닐 수 없다.
박지현의 다른 목소리, 이견(異見) 제기가 '저격(狙擊)' 수준으로까지 해석된 결정타는 지방선거 광역단체장 예비후보에 대한 가혹한 평가였다.
그는 8일 비대위 회의에서 작심한 듯 3연속 강타(强打)를 날렸다.
"대선 패배의 책임을 진다던 전 당 대표가 후보로 등록했다" (송영길).
"부동산 문제로 국민께 실망을 준 분들도 예비후보로 등록했다"
(노영민, 박주민).
"누가 이재명 전 후보와 더 친한지 내기하는 듯한 'JM마케팅'이 벌어지고 있다. '민심 공천', '개혁 공천' 없이 어떻게 반성과 쇄신이 가능할까?".
그의 '말 폭풍'은 전력(前歷)이 있다. 그는 지난 8일 안희정 전 충남지사 부친상에 조문 간 여권 고위 인사들에게 "멱살 잡아야 되나요"라고 말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이러저런 실수도 있었다. 지난 3월 26일 '서해수호의 날'에는 자신의 SNS에 '연평 해전'이라고 언급했다가 잠시 망신당하고 삭제하기도 했다.
나이가 나이인 만큼 아직 식견이 짧고 미숙한 것을 부끄러워 할 일은 아니다. 본인도 취임사에서 "이런 큰 자리를 맡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다"고 정직하게 말했다.
필자는 오히려 식견과 경험이 부족함을 알고 더 겸허한 자세로 임하는 박지현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실언(失言), 저격이 언제 나올지 조마조마하게 하는 것보다는 그 편이 훨씬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손', 누구인가?]
이제부터의 얘기는 전적으로 필자의 추론이다. 하지만 아직은 어린 박지현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말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언론이 박지현의 말을 자꾸 크게 다루다 보니, 본인도 이를 의식하고 논리체계를 더 잘 갖추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엿보인다.
그런데 송영길 전 당 대표에 대한 신랄한 공격을 보면서 "아, 그의 뒤에 '보이지 않는 손'이 있다"는 느낌 아닌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공동 비대위원장은 현역 의원이 비서실장으로 보필한다. 박지현의 비서실장은 장철민 의원(39, 초선, 대전동구)이다. 그런데 장 의원이 2017년부터 2020년 21대 국회에 입성(入城)하기 전까지 홍영표 의원 보좌관을 했다.
퍼즐이 좀 풀리는 것 같지 않은가?
홍 의원이 주축인 '민주주의 4.0' 이사 13명은 최근 '입장문'을 통해 "송영길 전 대표의 서울시장 출마는 지방선거 참패를 불러올 것"이라며 "그의 이런 후안무치(厚顔無恥)한 행동을 국민은 납득 못하고 오만하다 할 것"이라고 통박한 바 있다.
필자는 이 입장문에 충격받아 '민주주의 4.0' 대표 도종환 의원에게 "이게 '접시꽃 당신'의 국민시인이 쓴 글이 맞느냐"고 물은 뒤, '후안무치' 같은 잔인하고 낯부끄러운 단어의 입장문 따위는 더 쓰지 말고 "정계 은퇴해 시인으로 돌아가라"고 권유했다.
또 홍영표 의원에게는 "친문(親文)계 좌장이 된 만큼 좀 더 큰 정치를 하라"고 주문했다. 특히 "작년 5월 당대표 경선에서 송 전 대표에게 0.59%의 깻잎 차이로 진 의원이 그런 조잡한 입장문에 이름을 올리는 것은, '악감정의 발로'라고 오해받을 소지가 있다"고 충고했다.
특히 홍 의원이 한 차례 공천위기에 몰렸을 때, 자신의 공천을 물리고라도 홍영표를 공천해 달라고 농성(정세균 당대표 시절)해 끝내 관철시킨 사람이 송영길인데, 그를 돕진 못할망정 저격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고도 말해줬다.
박지현 공동비대위원장. 그대의 뒤 편에 비서실장 장철민 의원이 버티고 있다. 또 그 먼 뒤에는 홍영표 의원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여의도 방정식'은 26세 젊은이가 쉽게 파악할 만큼 간단치 않다. 자신도 모르게 혹시라도 그들의 대변인이 된 측면은 없었는지 겸허히 돌아보기 바란다.
[박지현에게 당부한다]
윤호중 공동 비대위원장 말고도 7명의 비대위원이 더 있다. 비대위원의 평균 나이는 43세. 특히 30대 비대위원 셋(권지웅 이소영 김태진)이 더 있다.박위원장에게 주어지는 기자회견, 브리핑 등 언론 노출 기회를 30대 선배들께 좀 나누어 드리면 어떨까?
그대의 말이 특히 뛰어나거나 내용이 탁월해서 언론이 그대의 말을 주목하거나 크게 보도하는 게 아님을 깨우쳤으면 한다. 당론과 다른 주장을 자주 펼치거나, 선배 정치인들을 가차없이 저격하는 그대의
말을 언론에서 선호하기 때문에
박지현을 그만큼 잘 활용하고 있는 셈이다.
또 하나. 좀 더 큰 호흡으로, 그리고 좀 더 공평하고 중립적인 시각으로 사물을 보고 사람을 판단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주기 바란다.
송영길 전 대표에 대해 생각해 보자. 22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고, 대선 패배가 확정되자마자 바로 대표에서 물러나 책임을 졌다.
서울시장 출마를 결심한 순간 21대 국회 임기
2년을 포기하는 것이요, 21대 국회 하반기 국회의장 경선도 포기하는 것이다.
서울시장 승리가능성이 그리 높지 않은 현 상황에서의 출마는 사리사욕(私利私慾)이라기 보다는 지방선거 분위기를 띄우고 다잡아보려는 희생 측면이 더 크다는 게 중론이다.
한 달 전까지 당 대표였다. 박 위원장이 "대선 패배 책임을 진다고 했던 사람이 출마했다"고 단칼에 베려고 해도 좋을만큼 문제가 많다고 보는가? 이낙연 총괄 상임선대위원장은 어떤 책임을 졌는가? 윤호중 원내대표(당시)는?ᆢ
결국 박지현의 주도로 서울은 '전략선거구'로 됐다. 그대의 강한 영향력이 입증되었다. 대신 당은 원칙을 잃었다.
당의 헌법(憲法)은 당헌, 당규이다. 당헌, 당규에 따라 서울시당은 후보 공모를 했고, 6명이 응모했다. 그럼 그 6명의 경선이 당헌, 당규에 맞는 것이다.
11일 그대가 나서서 "서울시장 후보는 새로운 인물을 더 찾아야 한다"며, "비대위가 더 적극적으로 경쟁력 있는 의원들의 출마를 설득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 길로 서울은 '전략선거구'로 정리됐다. 윤호중 공동 비대위원장은 "서울은 전략공천 할 수 있다"고 더 위험한 발언을 했다.
의석수에서 제 1당인 민주당이 이렇게 당 운영의 범전(範典)인 당헌, 당규 알기를 우습게 안다면 심각한 일이다. 박지현은 비대위원 이전에 당원이다. 당의 주인은 당원이고, 모든 것은 당원이 결정토록 하는게 정당 민주주의의 정석이다.
'비대위'가, 특히 공동비대위원장이 이처럼 쉽게 당헌, 당규를 위배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해주기 바란다. 더욱이 "경쟁력 있는 의원들의 출마를 설득해야 한다"고
말하니 당 안팎에서 "박지현이 누구를 밀고 있나"라는 바람직하지 않은 반응이 터져나오고 있는 것이다.이런 점에 대한 보다 신중하고 사려 깊으며 불편부당(不偏不黨)한 사고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내지르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과유불급(過猶不及), 안분지족(安分之足)이라는 말을 새기기 바란다. 지나침은 항상 문제를 낳는다. 박지현의 좀 더 달라지고 지혜로우며 성숙해진 모습을 기대한다.
더보기 http://www.guardian21.co.kr/77751
김기만. 전 동아일보 파리특파원/ 바른언론실천연대(언실련) 공동대표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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